예산역~무한천~추사고택~합덕제까지
▶트레킹 일자: 2024년 2월25일
▶트레킹 장소: 충남 예산 /당진
▶트레킹 경로: 예산역- 무한천-무한천 자전거길-종경교-오산1리마을회관
-화암사-△오석산(93m)- 추사고택(5코스+6코스 시종점)
-예당대교-구양교- 신택교- 합덕제- 합덕수리 민속박물관
▶트레킹 거리 및 소요시간: 21km/ 6:40
교통: 갈때= 영등포역 익산행 무궁화호(6시27분 발)-예산역8시15분착
올때= 합덕리 버스정류소(15시 20분) -신례원터미널 도보-신례원역
예산역(예산군 예산읍 역전로)~합덕수리 민속박물관(당진시 합덕면)
까지 진행도.
오랜만에 백제부흥군길에 나서니 오늘도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오늘은 예산역에서 추사고택까지 5코스를 걷고 계속
6코스를 이어 합덕수리민속 박물관까지 약 21km의
도보길을 걷는다.
8:25 예산역.
예산역 앞 광장에서 좌회전 하여 예산산성 방향으로
무한천변을 따르며 오늘의 도보길을 출발한다.
예산산성 방향으로 무한천을 따라간다.
8:35 무한산성 갈림길.
무한산성이 우측으로 갈라지는 갈림길로 무한
산성은 대흥 임존성과 함께 백제부흥군의 주요
거점으로 당나라 군사를 막아 싸웠던 곳이다.
다녀오고 싶으나 보이는것도 없고 비까지 내리니
생략하고 도로건너 무한천 체육공원으로 내려선다.
8:40 무한천 체육공원
무한천 둔치에 잘 조성되어있는 야구장과 축구장,
골프장, 산책로등 레져시설을 갖추고 있는 체육공원
산책로따라 쾌적하게 걸어나간다.
자전거길 도로가 계속 무한둔치 옆으로 이어지고.
618번 도로 교각 아래를 지나 이정표가 가리키는
추사고택 방향표따라 길게 이어지는 무한천변을
걸어간다.
9:21 40분 넘게 무한천 제방길을 걸어오다,
다리를 건너 무한천 반대편쪽으로 건너선다.
무한천 풍광.
무한천은 충남 청양군 화성면 산정리에서 발원하여
예당저수지를 거친후 예당평야를 관류하여 삽교천
에 합류하는 지방하천으로 오늘 도보길 내내 함께한다.
무한천변 물오리떼가 비상하는 모습을 포착 하려니
벌써 저 멀리 점으로 사라지고 있네...........
반대편으로 다리를 건너 한국농어촌공사 건물
앞에서 다시 무한천 둔치로 내려 다시 자전거길
을 따라간다.
봄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
버들 강아지 눈떴네 ...........!!
무한천변 자전거길은 계속 이어지고.
9:46 비닐하우스들이 밀집해있는 곳을 지나
종경배수장앞을 지나 종경교를 건너선다.
종경교를 지나며 무한천과 이별하고
좌측 신암리로 들어선다.
넓은 신암리 들녘을 가로지르고.
쪽파를 심어놓은듯 어마어마하게 들녘을
메우고 있는 비닐하우스 단지를 지나노라니
어느새 내포길은 오산리로 접어들고 있다.
10:21 오산1리 입구.
추적추적 내리는 가랑비에 쉴곳도 없었는데 마침
오산리 입구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무더운 여름철이나 추운 겨울철의 시골 버스정류소는
훌륭한 휴게소 역할을 해주는 고마운 쉼터다.
배낭을 내려놓고 간식을 먹으며 10여분 휴식하고
오산1리 입구로 들어 오산1리 마을회관앞을 지나간다.
오산 종경길따라 좌회전하면 도로아래는 공사가
한창이고 야트막한 오석산아래 용궁리 일대를
바라보며 걸어가다 화암사입구에 당도한다.
10:36 화암사 입구.
오늘 도보길에 비로소 산길이 시작되며
부드러운 흙길에 발걸음도 편안해진다.
잘라놓은듯 뭉툭한 돌들이 듬성듬성 놓여있는
숲길따라 걸어가니 김정희선생 필적이 새겨져
있는 소봉래 암각문 바위로 이어진다.
소봉래(小逢萊) 충남 기념물 제 151호.
화암사 뒷편 병풍바위 라고 불리우는 자연암반에
추사 김정희의 친필로 소봉래가 암각되어져있다.
오랜세월도 아랑곳 하지않고 또렷히 살아있는
필적이 신선하다.
소봉래 병풍바위를 지나 토막낸듯 서있는
바위무지들이 이어지는 능선따라 화암사로
향한다.
화암사.
멀지않게 있는 오석산 아래로 조촐하게 서있는
화암사가 아래로 보인다.
화암사는 추사 김정희와 그의 일가와 인연을 맺고
있는사찰이다.
사찰 입구에 정갈한 요사채를 거쳐야 대웅전으로 들어
설 수 있던 특이한 구조였는데 지금은 요사채를 헐고
다시 짓는지 공사중인 천막이 가로막고 있어 대웅전
앞으로 바로 내려선다.
요사채는 헐리고 지금은 대웅전과 약사전이 간소하게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다.
시경(詩境)
법당 뒷편에 있는 바위에 김정희 선생의 암각문 시경이
바위에 새겨져있다.
시경은詩의 경계 또는 시흥(詩興)을 불러 일으키는
풍취(風趣)라는 뜻으로 스승 옹방강에게 받은 탁본글씨를
새겨놓은 것이란다.
예서로 쓴 이 글씨는 송나라 시인으로 추앙을 받던 육우의
글씨를 추사 김정희 선생이 이곳 병풍바위에 새겨 놓았다고
한다.
약사전 주련의 글귀를 마음에 담아보며
화암사 경내를 벗어나 오석산으로 올라선다.
잘라놓은듯한 바위들이 이어지고 있는 길따라
무덤지대를 지나 오석산앞에 당도한다.
11:05 △오석산(93m)
봉수지맥길에 있는오석산을 밟아선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산꾼들의 표지기가 맞아준다.
이제 추사고택이 얼마 남지 않았네.............
추사김념관.
추사 김정희의 숨결이 남아있는 추사 기념관 앞에
서니 스탬프가 먼저 맞아준다.
백제부흥군길 5코스 6코스 시 종점이다.
추사고택을 시작으로 화순옹주 홍문, 백송공원 김
화순옹주 홍문 김정희묘등 차례차례 둘러보며 걸어
나가기 시작한다.
추사고택.
조선후기 대표적 서예가 김정희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한국 전통가옥의 특성을 간직하고 있는 집이다.
원래 김정희의 증 조부김한신이 영조의 사위가 되며 하사
받은 집으로 본래 53칸의 저택이었으나 일부만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김정희가 관직에 있을때는 서울의 월성위궁에서 지냈고
조상의 터전이 있는 이곳에서 성묘와 독서를 위해 자주
왕래하며 머물렀다 한다.
우물.
가문 대대로 이어져온 우물로 김정희의 출생에
대한 일화에 따르면,
어머니 유씨가 임신한지 24개월만에 김정희를 낳았
는데 말랐던 우물에서 물이 샘솟고 시들었던 나무
들이 생기를 되찾았다고 전해진다.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아름다운 고택풍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지막한 돌담이 길게 둘러서 있는안채와 사랑채가
단정하고 절제된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먼저 추사고택에서 제일 높은곳에 위치한 안채 뒤에
있는 추사영실로 올라가 본다.
추사영실(秋史影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뒤 아들 김상무가 세운 영당이다.
글씨는 조선 양반가의 전형으로 추사의 知己
권돈인이 썼고 내부에 추사의 초상화가 모셔져있다.
김정희 초상화.
현재 초상화의 원본은 국립중앙 박물관에 있고
현판의 원본은 간송미술관에 있다.
안채.
여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는 ㅁ자형으로밖에서 바로
들여다 보이지 않는 구조다.
양반가의 상징인 6칸 대청을 가운데 두고 안방과 건너방
을 마주하고 있는 구조다.
죽노지실(竹爐之室)
茶를 끓이는 죽로(竹爐)가 있는 방으로 사랑채
문 위에 걸려있다.
해시계.
사랑채 앞마당에 서있는 네모난 돌기둥은 그림자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로 추사가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석년(石年) 이라는 글씨는 김정희의 아들 김상우가
추사체로 써서 새긴 것이다.
사랑채.
ㄱ 자의 남향집으로 온돌방이 남쪽에 한칸, 동쪽에
두칸이 있고 대청과 마루로 되어있다.
손님을 접대하고 문학적인 유희를 즐기는 사랑채의
특성이 잘 살아있는 구조다.
월성위 김한신묘. (충남문화재 자료 189호)
추사고택 과거의 흔적들을 감상하고 나와 월성위 김한신
묘로 올라가 본다.
김정희의 증조부인 김한신과 영조의 딸 화순옹주가 함께
묻힌 합장묘다.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 김한신은 숙종때 영조의 둘째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에 봉해졌는데 사도세자와
말다툼끝에 벼루를 맞고 세상을 떠났다.
화순옹주는 이에 격분 열흘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남편의
뒤를 따라 숨을 거두었다.
김정희 묘.(충남 문화재 자료 188호)
김정희와 첫째부인 한산이씨, 둘째부인 예안 이씨와
함께 묻힌 합장묘.
실사구시(實事求是)정신에 입각하여 학문세계를
완성해 나간 실학자로 천문학에 대한 식견도 괄목할
만헸다.
칠십평생 열개의 벼루 밑을 뚫고 1천자루의 붓을 망가
트릴 정도의 예술혼을 불태우다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화순옹주 홍문.(충남 유형 문화재 제 45호)
영조의 둘째딸이자 김정희의 증조모인 화순옹주
의 정절을 기리는 열녀문.
김한신이 39세 젋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14일을
굶어 남편의 뒤를따라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고 죽었다 하여 불효라고
열녀문을 내리지 않았으나 후에 정조가 열녀문을 내려
화순옹주는 조선왕조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라고 한다.
백송공원.
볼거리가 많은 추사고택과 화순옹주 홍문등을
둘러보고 낮은 구릉지에 여러가지 조각품이 놓여
있는 백성공원을 한바퀴 돌아 본다.
백성공원에서 바라본 화순옹주 홍문.
그 너머로 월성궁 김한신의 합장묘도 바라 보인다.
백성공원을 둘러보고 공원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백송을 보기위해 백송로따라 걸어가다 좌측 위로
보이는 용궁리 백송으로 올라서 본다.
용궁리 백송.
나무껍질이 흰 얼룩무늬라 흙갈색의 다른 나무와
구별이 잘 되는 이 백송은 김정희가 청나라 연경을
다녀오며 가져온 씨앗을 고조부 김흥경의 묘 앞에
심은것으로 전해진다.
흰색을 좋아하던 조선사람들은 백송을 귀하게 여겼
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번식이 어려워 몇그루밖에 없는
휘귀한 나무란다.
12:10 백제부흥군길 6코스 출발.
추사고택에서 50분 넘게 시간을 할애하고
구양교로 향하며 본격적인 6코스를 출발한다.
12: 24 신암면 예림리 마을로 직진하다 우측
농로로 진입하여 삽교천 제방길을 따라간다.
철탑 너머로 멀리 보이는 예당대교를 포스트
삼아 걸어간다.
삽교천 풍광.
12:46 예당대교 아래 통과.
13:10 지루한 제방길이 지겨워질 무렵
저 앞으로 건너서야할 구양교가 바라 보인다.
13:17 구양교.
차가운 바람속에 마땅히 쉴곳도 없어 쉬지 않고
걸어왔는데 다리 건너기 전 아래 시멘임도가
아늑해 보여 점심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어제 보름날이라 가져온 구수한 오곡밥이 술술
잘도 넘어간다.
15분 정도 휴식하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구양교
를 넘어간다.
구양교를 건너서니 이제 당진땅이다. 천주교 성지
길이 우측으로 이어지나 합덕제 방향의 백제부흥군
길로 좌회전하여 도로를 건너간다.
비는 멎고 나지막한 구름이 수채화 물감을 풀어
내리고 드넓은 예당평야를 가로지르며 삽교천
둑길따라 걸어간다.
삽교천 둑방길.
14:01 신택교.
신택교를 건너 함께 온 일부 천주교 순례길은 좌측으로
갈라져 가고 백제부흥군길은 우측 석우천 둑방길을
끼고 걸어간다.
예당평야.
삽교천과 그 지류인 곡교천, 무한천의 유역으로
예산 당진 아산 서산에 걸쳐있는 평야다.
조석 간만의 차가 심하고 수심이 얕아 관개시설을
정비하여 쌀 보리등의 생산이 많은 평야지대다.
좌측으로 신리성지가 갈라지고 얼마남지않은
합덕수리 박물관 방향으로 우틀한다.
14:43 합덕제
연지교를 넘어 서니 합덕제가 보이는데 겨울철이라
꽃도 없지만 일부가 공사중이다.
연꽃이 피는 여름철에 오면 아름다운 연꽃들이 장관을
이룰듯 하다.
초가집등 민속체험시설이 꾸며진 공원 뒷편으로
합덕성당도 건너다 보며 조금 걸어 6코스 종점인
합덕수리박물관앞에 당도한다.
14:53 합덕 수리민속 박물관 당도
6코스 7코스 시종점.
농경문화를 기본으로했던 다양한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다.
합덕제.
합덕방죽 합덕연지로 잘 알려져있는 저수지였는데 지금은
논으로 되어있어 복원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후백제 견훤이 이곳에 둔전을 개간하고 12,000명의 둔병과
말 6,000필을 주둔시켜 이 병사들에 의해 합덕제가 만들어
졌다 한다.
합덕제는 천년의 역사와 함께 주변지역의 농업생산량을 크게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여 1917년 10월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에
등재되었다.
15:05 합덕리 버스정류소.
오늘도 역사적인 장소를 음미하며 걸어오다 보니
발걸음도 늦어지고 시간도 많이 흘려 보낸것 같다.
길게 걸어온 백제부흥군길 5코스와 6코스길은
이곳에서 끝마치기로 한다.
합덕수리박물관에서 멀지 않은곳에 있는 합덕리
버스 정류소를 찾아 15시 20분에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신례원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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